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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달린 우리집

정화조 위의 잔디는 언제나 더 푸르다 (미네소타 버전)


“정화조 위의 잔디는 항상 더 푸르다”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ver the Septic Tank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ver the septic tank:  

미국사람들이 대화 중에 자주 인용하는 상용어구.  엠마 봄백이란 인기 유머리스트이자 지방신문 칼럼리스트가 기존의 속담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를 웃기게 변조해 유행시킨 말이지요.  


저 아래 첨부한 글은 최근 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발견한 글을 모디화이 한겁니다. 사실 벌써 이십여년전 쯤에 이와 비슷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보다도 전에 이와 매우 유사한 내용의 글을 저 역시 썼었지요. 문장도 코믹터치로. 당시엔 블로그가 없었고 저의 웹사이트에 올렸던 기억입니다. 당시 남가주 라구나니겔에서 미드웨스트(중북부) 지방으로 처음 이사갔을 무렵이지요.  


헌데 얼마후 우연히 다른 사이트에서 유사한 내용의 글이 떠도는 걸 보았습니다. 앗, 누가 내 글을 흉내냈나? 했는데 알고보니 이미 비슷한 내용의 영어로 된 글이 그 전부터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플로리다버전, 몬타나버전, 위스컨신버전, 버팔로-뉴욕버전….이후 이를 모방한 강원도 버전도 나왔다 합니다.   


누가 원조설렁탕인지는 알 수도, 따질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다만 모두가 로변철과 유사한 체험, 즉 꿈을 안고 타주(국)으로 이사했다가, 아마도 주로는 도시에서 변방으로 갔다가, 이른바 낭만적 캐빈휘버가 사라진 후 맞딱트린 냉엄한 현실, 그 느낌과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여간 인터넷에서 오늘 다시 그 유사한 글을 재발견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완전 인터넷의 고전 중 하나가 된 듯합니다.  수십년째 여러 사람에 의해 변형되면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는 건 일단 글이 유머러스하기 때문일듯 합니다. 그러면서도 인생의 깊은 진리- 늘 희망을 품고 어딘가로 자꾸 옮겨보지만 사람사는데 다 장단점이 있고 결국 거기가 거기-라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실...을 담은 이야기라  대중이 공감하는 때문이겠지요. 


제 사이트는 없어진지 이미 오래고 이십년전 원글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기억을 살려 완전 새로 써볼까하다가…구차니즘에…그냥 떠도는 인터넷 고전 증 하나를 대충 모디화이해서 로변철의 미네소타버전을 하나 만들어 봅니다. 기본 전달하려는 메시지야 다 같을 거이니까 뭐....



 미네소타의 악몽  


SEPTEMBER 

-지난 봄 캘리포니아에서 미네아폴리스로 이사를 왔다. 모든게 만족이다. 광활한 자연이 아름답다.  어서 겨울이 와 눈덮인 산야를 보고싶다. 주여, 당신이 인도하신 이 드넓은 일만(10,000)호수의 땅-미네소타주의 별명-을 진정 사랑합니다.

-자연을 닮아서일까. 어쩜 사람들이 이리도 친절하고 넉넉할까.


OCTOBER

-드디어 가을. 뒤뜰너머 빛나는 호수변에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환상이다. 

-주말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면 곳곳에 사슴가족들이 우릴 반긴다. 때로 집 뒷마당까지 찾아오고.  

-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오! 미네소타. 난 정말 이곳의 모든 것과 사랑에 빠졌다. 

 

NOVEMBER

-사슴사냥철이 시작되었다. 저 우아한 밤비가족에게 총구을 겨누는 디어헌터들의 잔인함을 이해할 수 없다. 어서 눈이 오고 사냥철이 끝나기를

 -예이!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눈이 왔다.  블라인드를 여니 거실 창문들이 전부 한폭의 풍경화로 변한다. 세상 천지가 온통 하얗다. 

-사계가 거의 없는 밋밋한 캘리포니아가 뭐 좋다고 그리 오래 살았던가. 아직도 LA가 최곤지 알고 사는 동포들이 불쌍하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다. 다들 이리로 이사오라고.  


DECEMBER

-다시 눈발이 날린다. 신나서 콩콩 뛰는 아이들과 눈 위에서 뒹굴었다. 눈사람도 만들었다. 드라이브웨이에 쌓인 눈을 치웠다.

-오늘도 눈. 거대한 제설차가 눈보라속에 지축을 울리며 나타났다. 화성에서 쳐들어온 외계인 같다.  순식간에 길이 뚫리고 길가에는 눈 언덕이 생겼다. 역시 선진국답다. 눈치우는 것도 화끈하네! 갓 브레쓰아메리카! 



-밤새 눈이 꽤 왔다. 출근하려면 차를 빼야해서 한시간 넘게 삽질하고 나니 땀에 흥건히 젖었다. 그런데 샤워하고 아침 먹는 사이 지축을 울리며 제설차가 지나갔다. 내다보니 이런, 드라이브웨이 입구에 알프스산맥을 만들어 놓고 간다. 저거 웃기는 놈이네. 할수없이 다시 삽들고 나가 서둘러 중간에 통로를 뚫었다. 아내까지 나와 합세했다. 헛바퀴를 돌며 간신히 차를 뺐다. 결국 중요한 비지니스 미팅에 늦었다.댐잇! 

-이거 좀 심하네. 퇴근길 또 함박눈이 쏟아 진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운전해 귀가하니 드라이브웨이가 또 막혀있다.넥타이맨체 삽질 한시간을 하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손에 물집이 생겼다. 온 관절이 안 아픈데가 없다.에고에고.  

-또 눈! 화이트크리스마스는 무슨 얼어죽을. 엿이나 먹으라지.  


JANUARY

-오늘도 드라이브웨이를 뚫느라 삽질이다. 이놈의 털보 운전사, 걸리면 잡아서 거세를 시켜 버릴테다. 드라이브웨이 입구 눈더미 속에 커다란 콩크리트 덩어리를  숨겨 제설차를 망가 뜨렸다는 이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미드웨스트지방 시골 무지랭이들, 정말 무식하다니까. 

-이번에는 꾀를 내서 제설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한번에 눈을 치웠다. 역시 살다보니 요령이 생긴다. 근데 악! 제설차가 하루 두번도 오나보다. 눈산맥을 치우느라 너무 피곤해 한숨자고 일어나 보니 이번에는 에베레스트산맥이다. 이 망할놈의 제설차 운전사를 어쩐다....

-눈치우다 삽자루가 또 부러졌다. 결국 홈디포에서 천불이 넘는 스노우블로우어를 정가 다주고 샀다. 봄에는 반값 세일을 한다던데 배아프네. 

-눈녹이느라 노상 길에 뿌려대는 흙과 염화칼륨. 실내 카펫은 엉망이고 차는 자주 세차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헌데 강추위로 카워시들도 1주일째 문을 닫았다. 차 밑에 얼어붙은 눈속의 빨간녹이 매일 차를 갉아먹고 있다.    


FEBRUARY

-폭설로 휴교령. 아내는 아이들 때문에 출근을 못한다. 

-눈, 눈, 눈… 종일 눈치우라 볼일 못보았다. 이러다간 다들 지붕 위로 걸어다닐 판. 간신히 눈을 치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제설차. 저 인간은 째려보는 줄 모르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창박으로 고개를 쑥 빼더니 '굿모닝 미스터 로' 하면서 썩쏘를 날리고 간다. 저걸 따라가서 흠씬 패버리고 감옥을 가버릴까?

-토박이 이웃들에 따르면 이 저주받은 땅에서는 오뉴월은 물론 심지어 독립기념일에도 눈이 온 일이 있단다. 오 주여, 왜 이런데로 나를 인도하셨나이까  

-더 이상 큰 눈은 없다더니 일기예보가 틀렸다. 스노우스톰이 3일째 몰아친다. 여기 미국맞아? 아무래도 북극으로 잘못 온듯하다.   


MARCH

-아침에 털보 제설차 운전사가 현관문을 노크한다. 길 옆 디치에 바퀴가 빠졌다나. 삽 좀 빌려 달랜다. 이 자식이 간뎅이가 부었나, 아주 염장을 지르네…겨우네 당한 생각에 부러진 삽자루로 면상을 한방 먹이려다 겨우 참았다. 

-서둘러 교회가는 길, 뛰어나온 사슴을 피하려다 새차를 가로수에 박아 똥차로 만들었다. 저 멍청한 미네소타의 사슴들은 차가 오면 더 달겨든다. 대체 사냥제한은 왜하는거지? 

 -땅바닥 구경한지 어언 6개월이 넘으니 아스팔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안난다. 이런 저주받은 땅에 몇년째 사는 인간들이 존경스럽다. 추위에 다들 뇌세포가 얼어 붙은거 아냐 . 


APRIL

-홍수가 났다. 겨우내 주차장이나 길가에 산처럼 쌓인 눈들이 갑작스런 기온상승으로 한번에 녹은건데 몇년마다 한번씩 이런 일이 생긴다나.  OMG! 지하실이 물에 잠기고 운하로 변한 다운타운에서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뉴스에 나온다.(로변철이 Midwest로 이주한 첫해 실제 그랬음.)  

-엄마야…겨울이 끝난 줄 알았더니 다시 시베리아. 눈폭풍이 분다. 기가 막혀! 지상에 지옥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여기다. 

-아아, 다음 겨울이 오기 전에 어떻게해서든 여길 탈출해야 한다. 눈만 안온다면 어디라도 좋다. 



* 이글에서 추운겨울/눈 대신  폭염/늘 뜨거운 태양로 내용을 뒤집어 써도 전하려는 메시지는 같아 질 겁니다. 또는 한국미국 혹은 그 역으로 대체해 글을 모디화이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입니다. 

 

* 로변철이는 지금 겨울을 나러(snowbirding)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몇개월째 머무는 중입니다. 그런데 다시 미드웨스트 쪽 '잔디'가 슬슬 푸르러 보이기 시작합니다. 5월경 방문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