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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더 작게, 더 심플하게


우리 맞은 편 사이트에 좀 튀는 칼라(노란색 데칼)의 디젤푸셔가 새로 입항했다. 

주인은 타고온 잘 빠진 잠수함의 광택 못지않게 반들반들한 대머리의 빈쓰라는 사람과 그의 히스패닉계 아내.  

"30여년을 헌팅턴비치 오일필드에서 석유 뽑아 올리는(?)엔지니어로 일했어. 그러다 나이 60인 올해 조기 은퇴했지. 연금과 베네핏을 따져보니 그게 일하는 것보다 수입면에서 더 나아. 애들도 독립해 나간지 오래고. 이제부터는 팔도유람이나 다니며 살려구해…”  

며칠 관찰하니 빈쓰아저씨는 거의 종일 밖에 나와 잠수함 그늘 아래서 지낸다. 낮에는 먼산을 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문득 생각난듯 일어나 하는 일이라곤 개 똥 뉘러 백미터쯤 떨어진 도그파크에 갔다 오는게 전부. 


그러다 해질녘이면 혼자 그릴에 불을 붙여 고기를 굽고 맥주를 홀짝인다. 시선은 내내 잠수함 외벽에 붙은 텔레비젼의 스포츠 중계에 고정.부인은 뭐하는지 거의 바깥 출입이 없다. 안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만 보인다. 


“우리 부부는 원래 취미가 판이해. 보는 채널도 완전히 다르고. 그래서 늘 각자 따로 놀지” 


그의 잠수함 하부 스토리지와 내부 수납공간, 캐비닛들엔 그야말로 짐이 빼곡하다. 성냥곽하나 더 끼워 넣을 틈이 안보인다. 부부 각자 취향이 다르다보니 가지고 다니는 물품들, 놀이/캠핑장비도 더블. 그 양이 엄청나다. 이건 뭐 잠수함이 이삿짐 트럭도 아니고…. 


하여간 용한 부부다. 

잠수함 제한된 공간에서 종일 얼굴 맞대고 부대끼며 지내야 하는게 우리 훌타임알브이어 Fulltime RVer 부부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 뭐든 큰거 좋아하고 위시리스트가 끝이 없는 이들이 어껗게 이런 라이프스타일에 합의를 도출했을까. 취미도 안맞고 각자 안팎에서 따로 놀았었다면 버스안 좁은 공간에서 늘상 마주보며 지내기가 만만치 않을텐데….우리처럼 붙어 사는데 이력이 난 자칭 ‘지남철 부부’라면 모르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빈쓰씨는 산지 몇달이 채 안된 잠수함이 너무 좁다며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다른 걸 사려고 알아보는 중이라 한다. 이유는? 


“너무 작아. 특히 마누라와 욕실이랑 화장실을 같이 쓰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구” 


그래서 코치 중간과 끝에 두개의 배쓰룸이 별도로 시설된 모델을 사려고 찾는 중이란다. 하긴 요즘의 신형 클래스 A에는 his 둑간과 her둑간이 나누어져 있는 모델들이 많다. 빈쓰씨는 그게 꼭  필요하단다. 


구경시켜준다기에 며칠전 그의 잠수함 내부에 따라 들어가 보았다.  알브이어 중에는 관심을 좀 보이면 스스럼없이 자기 잠수함 내부 투어를 시켜 주는 사람들이 많다. 대리석으로 꾸며진 배쓰룸이 우리 것보다 거의 두배쯤 넓다. 샤워룸외에 배쓰텁도 붙어 있고. 부부가 체구도 작은 편인데.  

 

같은 알브이 훌타이머라도 미니멀리스트의 험블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걸 지양(攘)하는 이들도 많다. 물론 자기의 재력, 능력범위라면 크고 화려함, 편함을 쫓는게 상관할 일도 아니고 흉 볼 일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아니 부자는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분명 게임의 승자이다. 그들이 자꾸 소비하고 써주어야 고용이 창출되고 경제가 돌아간다. 그 부분 존경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보통은 우리 연배가 되면 큰 집, 좋은 차 그걸 유지하기 위한 랫레이쓰rat race에 점차 신물이 나기 마련이다. 다 해보니 별거였다. 하여 모든 걸 더 작고, 더 심플하고, 더 소박하게 축소하려고 발버둥 치게 된다. 외화내빈 보다는 때로 궁상스러워도 보일지라도 청빈의 삶,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에 더 매력이 느껴진다. (인정한다. 반쯤은 게으른자의 핑계이기도 함을....)

자발적 고행. 우린 민폐만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최저, 최소의 마지날에 근접한 미니멀라이프을 살려 한다. 숟가락 하나 젓가락 두개 빤쓰 세장이면 족하다. 다행히 옆지기도 나와 같은 마음이니 고맙다. 아니 한 술 더 뜬다. 요즘도 위네바고의 클레스C-Navion나 Solaron, Citation 같은 소형 잠수함이나 micro campervan이 지나갈라 치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난 저런 작은 공간에서도 얼마든 살 수 있어. 청소하기도 쉽자나.   


그런 자린고비 부부의 속내를 모르는 빈쓰씨, 우리도 어쩌면 잠수함을 바꿀지 모른다(더 작고 심플한 것으로)고 하자 엉뚱한 헛다리를 짚는다. “혹시 내 코치 살 의향 있으면 말해. 뒤에 블랙 비머(BMW)는 그냥 덤으로 얹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