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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행복한 시계공

간만에 캐비넷 금고를 정리하다보니 낡고 오래된 손목시계가 여러개 나왔다. 개중엔 이십년 가까이 햇볕을 못본 놈들도 있다. 그래도 한때는 내 몸의 일부였을텐데 낯이 설다. 하긴 손목시계란걸 마지막 차고 다닌게 언제던가....


이걸 다시 찰 일이 앞으로 있을까, 

누구 줄 사람도 마땅찮고 그렇다고 버리려다 보니 제법 브랜드네임이 있는 쓸만한 것도 몇개 있다. 혹시나 해서 구글링를 해보던 아내가 놀란다. 


앗, 이건 비슷한게 이베이에 천오백불에 나와 있자나! 


일단 작동이 되나 보려고 쓸만해 보이는 몇개를 골라 배터리를 갈아 작동되는건 포운샵 같은데 팔아 버리기로 했다. 혹시 골동품 가치를 쳐줄런지도 모른다. 


해서 물어 물어 찾아간 다운타운 뒷골목의 시계수리점은 다 쓸어져가는, 무슨 서부영화 셋트장 같은 건물에 있었다. 그것도 삐걱거리는 좁고 어두운 복도 2층 끝방이다. 여기서 시계 톱니 고쳐서 밥이나 먹을래나 걱정된다. 


     ▣ 삼십년간 한 우물만 팠다는 우리동네 시계포 아저씨-


근데 왠걸, 배터리를 갈며 시계공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니 이거 보통 비지니스가 아니다. 삼십년 가까이 이일을 하다보니 로칼 뿐 아니라 미전국에서 고급시계 수리의뢰가 들어 온단다.  평생 시계공으로 한우물만 팠다는 그는 이젠 벌만큼 벌고 놀고 싶으면 언제고 놀러 다닌단다. 젊어서 부터 모토사이클 광으로 애마 하레이를 타고 세상 안가본 곳이 거의 없다 한다. 뭐라는 상사가 있나 누구 눈치볼 일 있나 게다가 정년도 없으니 세상에 이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며 자랑한다. 


로변철이 맞장구를 좀 쳐주니 신이 나서 각종 자격증, 사진 앨범들을 보여주는데 스스로의 기술과 경력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도 시계를 고치고 디자인하고 하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재미 있단다. 장인정신이 곳곳에 묻어나는 작업실을 둘러보니 아닌게 아니라 대단하다. 이 양반 이 정도면 수입도 장난이 아니겠다. 


요즘 세상에 누가 시계를 고쳐서 차고 다닌담-하고 막연히 사양길의 비지니스라 생각했는데 세상 일은 참 알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텔레비젼이 나왔을때 다들 라디오시대는 끝난 줄 알았다고 한다. 인터넷이 나오고 종이책, 신문은 바로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었고. 물론 뉴웨이브에 밀려 재래시장은 엄청 축소돼고 수요는 팍싹 줄기 마련이다. 


러나 잽싸게 편리를 쫓아 새로운 트렌드에 편승하는 대중들 속에는 언제나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고 향수에 연연하는 이들이 일정 비율 있게 마련이다. 한편 시장이 축소돼는 만큼 경쟁도 그 만큼 줄어 들테고. 요컨데 버티면 살아 남을 수 있고 나아가 위기가 기회가 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만 해도 네셔날체인의 대형 비디오대여점이 줄지어 망해 나갔는데 그 틈에 후미진데 작은 대여점을 새로 연 쿠크(cuckoo)가 있다. 그리고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수년째 짭짤한 재미를 보는 중이다. 


비지니스뿐이랴, 세상 앞날은 누구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장인정신과 프로기질로 무장해 끈기있게 물고늘어지면 챤스는 언제나 생겨난다. 아무리 맛이 가는 분야, 사양산업이라도 적어도 한동안 은 버틸 여지와 시간을 주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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