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석기시대까지는 아니고 대충 1994년이나 95년쯤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도 장소는 바로 이곳 오렌지랜드. 당시엔 40피트짜리 휩씌윌 5th wheel이 청년 로변철과 그대의 잠수함이었습니다. 그때 겪은 비슷한 헤프닝이 근 사반세기가 지난 요즘 반복되는게 신기하다면 신기합니다.
이상한 일이다.
로변철이네 쌀독이 비어가는 줄 어찌아셨을까. 이번에도 동방 아니 서방에 귀인 아닌 귀인이 출현,
풍성한 양식을 무한리필 해 주신다. 일주일에 두서너번씩. 그것도 월맛 같은 싸구려 그로서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른바 고매푸드 gourmet food를 입맛대로 골라 먹으라는 것이다.
이십여년전 어느날.
지금 우리가 정박 중인 오렌지랜드 바로 우리 옆사이트에 한무리의 여행자그룹이 들어 왔다. 캠버밴 서너대에 나누어 타고.
일행은 삼사십명으로 처음엔 일가 친척들의 무슨 훼밀리리유니온family reunion gathering이겠거니 생각했었다. 노년부터 중장년, 청년, 십대 그리고 어린이와 갓난아기까지 다양한 연령대.
ㄱ
▣ 크리스챤 방랑히피 "빛의 삶-무지개가족" 그룹의 초기 원조들은 이런 모습.
헌데 캠핑장에서 보는 그런 연례 가족모임이라기에는 어째 이들 행태가 좀 야릇하다. 일단 행색들이 검소하다 못해 남루하다. 타고 다니는 잠수함-캠퍼밴은 가히 고철수준. 그렇다고 단순 홈스리라기엔 머리며 옷매무새들이 깨끗하고 정갈하다.(위 사진의 아저씨는 예외)
가만보니 날씬하고 용모가 수려한 선남 선녀들이 많다. 종자는 금발의 코케시언 일색.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예의는 또 어찌 그리 바른지 어린아이들 조차 말끝마다 sir, madam 붙이기를 잊지 않는다. 한마디로 행색은 와이트트레쉬 맞는데 품행은 하이소사이어티.
특히 인상적인 것.
틴에이지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돌보고 그 작은 아이들은 토들러들을, 토들러는 베이비를 돌보는 일사불란한 순차적 관리시스템. 그렇다고 무슨 아미쉬나 메노나이트의 고도로 절제된 엄숙한 분위기도 아니다. 모두들 자유분망하고 명랑하다.
그들의 잠수함-히피밴-내부를 슬쩍 들여다보니 십자가 장식등으로 무슨 예배당 같이 꾸며놨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저녁으로 모닥불 둘러 앉아(지금은 파크내 본화이어가 금지지만 그땐 피워도 됐다.)기타치며 멋진 화음의 찬송을 부른다. 강강수월래 스탈의 춤도 추고. 그런데 가무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늘상 밥먹고 하는게 모여서 찬양이고 춤이니.
알고보니 이들은 빛의 자녀임을 자처하는 무지개 가족의 일파였다.
방랑하는 베어풋의 크리스챤 히피 컬트. 당시 그 소그룹의 리더는 의사출신의 오십대 부부. 그는 어느날 거듭남 신비 체험 후 가산을 팔아 홈리스들에게 다 나눠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중생 계도-방랑선교의 사명을 받았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스토리....
추종자들과 함께 이렇게 집시처럼 선교여행을 다닌지가 그때 당시 이미 십여년째라 했던 것 같다.
무리 중에는 당시 십대후반, 이십대의 청년들이 많았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전하려는 열정이 지나쳐 한때 일각에선 젊은 여성신도들이 육체마저 선교의 방편으로 활용한다는 세간의 오해를 받아 언론에 보도돼기도 했던 기억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며 아마도 여성멤버들이 아무나 잡고 다정하게 허그하고 얼굴을 비비기 잘하는데서 온 오해였을듯)
로변철이 신대륙 오기전 런던에서 경험했던 뉴에이지트레블러스의 순화된 신대륙 버전 쯤이라 해도 좋으리라.
그런데 그들과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면서 그리고 하마터면 식구가 될뻔하면서 예상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렇게 노래하고 춤이나 추며 돌아다니면서 대체 밥은 어떻게 먹나 걱정했는데 왠걸 저녁이면 모여 앉아 다양한 레스토랑 투고 음식들을 풍성하게 즐기는게 아닌가. 아니 음식이 넘쳐나 이웃 캠퍼들에게 까지 투고해 온 음식들을 박스째 나눠 준다.
처음엔 께름찍해하던 일반 캠퍼들도 나중엔 저녁마다 슬슬 눈치보며 모여 든다. 알고보니 매일 저녁이면 주변의 주로 크리스챤 오너들이 경영하는 레스토랑들을 돌며 기부/헌납 받은 제고 음식들이었다.
그들은 그날 팔지 못한 음식은 무조건 버린다는 운영방침을 가진 전국 고급식당, 내셔날체인점들의 리스트를 귀신같이 꿰고 있었다.
-이후 이어진 로변철과 레인보우 훼미리의 인연, 더 깊은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다시 소개하기로.
★★★
지난달 초 예약혼선으로 파크내에서 캠핑사이트를 옮기게 되었다. 어린 딸만 셋을 둔 **와 ****이라는 사십대 후반 백인부부가 우리의 새 이웃이 되었다. 헌데 한눈에 다른 대다수 캠퍼들과 달리 이들 가족은 디즈니랜드 구경 온 관광객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다섯식구가 견공까지 한마리 모시고 낡아 빠진 20피트짜리 작은 트레일러에 사는거다.
▣ 주말을 맞아 코인라운드리-빨래터에 가는 무지개 가족 부녀.
딸 셋은 모두 학교에도 안다닌다. 세속에 오염된 학교에 보내기 싫어 ****이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그들의 잠수함은 주변의 빠까번쩍 럭셔리 RV들과 비교되 더욱 우울하고 초라해 보인다. 온식구가 그 좁은 공간에 살다니 이건 뭐 그 옛날 서울의 재개발 쪽방촌도 울고 갈 상황.
아이들 밥이나 제대로 먹이고 사는지 심히 우려된다...걱정하는 찰라,
왠걸, 웃기는 상황이 20년만에 재현되고 있다.
▣ 이웃트레일러 ****과 그녀의 큰딸(사진)의 강권에 못이겨 한차 가득 가져온 기부음식 중에 필요한 것을 할 수 없이(?) 고르는 중인 그대.
매주 두세번씩 ****과 그녀의 딸(사진)아이가 우리 잠수함 해치를 노크하는 것이다.
"오늘도 헌납 받은 싱싱한 야채와 음식들이 너무 많아요, 버려야 할 지경이에요. 제발 좀 가져가세요"
음식들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걸 그대로 볼 수도 없고....게다가 우리도 비싸서 못 사먹은 브랜드 음식들도 있다. 문 두드릴때 마다 매번 거절하기도 그렇고...하다보니 어느새 극빈자 가족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상황...
이거 여행하다 보니 별일을 다 경험한다.
무엇보다 같은 장소에서 이십년전 상황이 재현되다니, 실로 이상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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