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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백만장자 랜디의 깨달음


로변철같은 크리스챤으로서 분명 붓다나 부디즘의 '삐B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언행이나 속의 깊이가 거의 '생불' 수준이다. 항해 중 이런 미국사람들을 드물게 만난다. 오늘 소개하는 랜디 브리머도 그 중 일인이다. 

사업위기, 가정불화, 뇌종양 극복하며 인생달관-
백만장자 랜디의 깨달음  

랜디 브리머씨는 트라이스테이트 토종의 건축업자다. 자칭 '와이트트레쉬 가정에서 베어풋범킨(촌놈)으로 자랐다'는 그는 짝지를 임신시키는 바람에 고등학교 중퇴 후 페인트 공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후 사십여년간 컨스트럭션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90년대 말 안드로메다시 서버브에도 고급주택 건설 붐이 일었다. 랜디는 전망 좋은 호숫가에 낡은 집들을 저가 매입해 리모델링해 파는 이른바 하우스 훌리핑으로 상당한 부를 축척했다. 원래 어려서부터 디어헌터였던 그는 이 무렵 심심하면 친구들을 모아 전용 제트기로 아프리카, 시베리아 등지로 사냥을 다녔다. 그의 호화주택 지하에는 첨단영상장비의 영화관과 와인창고를 만들어 놓았는가하면 007영화 스타일로 숨겨진 바튼을 누르면 홈바의 벽이 스르르 열리면서 나타나는 비밀벙커/패닉룸 빼곡하게 세계각국의 핸드건, 샷건과 기관총등 무기류 수집을 취미삼기도 했다.  


지난 6월 어느날. 랜디씨 저택 들어가는 입구에 정박 중인 로변철의 도잠함 벡트라와 혼다.  


그러나 누구나 늘 순풍에 돛달 수만은 없는 법, 승승 장구하던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2007년 금융위기와 더불어 그가 벌린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일제히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그 무렵 아들들은 마약등 문제로 계속 속을 썩이며 말썽을 부렸다. 이 과정에서 부인과 사이도 벌어졌고 각자 애인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만성두통에 시달리던 그에게 뇌종양의 일종인 희귀암(병명 들었는데 까먹음)에 걸렸다는 청천벽력의 진단이 내려졌다. 본인 말로는 사업상 거의 종일 셀폰을 귀에 대고 산 게 하나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의심된다고 했다. 글쎄...?  이 대목에서 랜디가 한 말, 고개를 덜레 덜레 흔들며. " ....misfortunes or bad situations always come in groups, they never come in a single way..."액운은 늘 떼거지로 몰려 다닌다니까...

 

성공 후 떼지어 찾아온 액운 

사업부진, 가정불화 그리고 뇌종양...

이후 키모떼라피를 받으며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랜디는 사업, 투자, 가정 모두 다운사이징하고 재정비했다. 자녀들에 대한 높았던 기대치도 낮추었고 바꾸려던 조강지처도 그냥 재활용하기로 했다. 미국말 표현대로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바라 보니 차츰 해결점이 보였다. 뇌종양 선고 후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기적적으로 암을 극복했고 현재 의사의 완치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날 떠나려는데 갑자기 잠수함 시동이 안걸린다. 테스터를 들고 나와  배터리를 점검 중인 랜디 아저씨.  원인규명을 위해 둘이서 여기저기 열어보고 한참 고생을 했는데 알고보니, 이런, 너무나 황당/간단한 문제여서 허탈했다는....



그와 나눈 일련의 대화를 통해 나는 이 사람이 에그노피안 나인레블 중 센션트 비잉(sentient being 세속자)을 벗어나 수행자(apprentice)의 견각 경지에 들어 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는 의도하거나 의식하지 못했을 지라도. 

인간의 삶이란 천차만별 한듯하면서도 전체 패턴은 대동소이다. 그의 인생역정에도 예외없이 블루맨들이 개입했다. 아니, 놈들의 장난은 실로 장난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이룬 후 느끼는 공허란 놈,  쾌락의 끝에 반드시 등장하는 허무란 녀석, 예기치 않은 사업위기때 나타난 불안란 자식, 흔히 자만과 방탕에 물들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찾아오는, 뇌속의 종양과 오년여의 사투를 강요한 병마란 악당 ...들이 번갈아 집요하게 랜디를 갈구고 괴롭혔던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들 블루맨들은 랜디의 영적각성과 견성을 촉구하는 캐탈리스트 내지 트레이너 기능을 해 준 셈이다. 


잠수함 속 침대에 누워서 바라본 랜디의 멀티 밀리언 하우스 일부.   

그는 1년에 교회 한번정도 가는 무늬만 크리스챤이다. 내심은 거의 무신론에 가깝다.그렇다고 타종교나 뉴에이지 등에 상식이나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에그나스티시즘agnosticism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그 흔한 달라이라마 책 한권 안읽었다.  타오Tao가 중국집 이름 아니냐고 반문하는 가방줄 짧은 아저씨이며 살생(사냥)이 취미인 평범한 블루칼라 아저씨이다. 그런데 그의 행동거지와 말하는 품새에 뜽금없이 묻어나는 동양적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분위기....그 발원지는 어디일까?  


기억에 남는, 지극히 에그노피안'스런' 랜디씨의 몇 마디:


랜디가 삶을 대하는 자세의 깊이는 심산유곡의 암자에서 똥폼잡으며 또는 남방의 정글에서 사타구니 커버용 기저귀만차고 토굴정진 진짜로 몇십년한 고승들의 그것과 근본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만 그는 도망가지 않고(아니 못하고) 인간정글에 남아 부딪히고 깨지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를 닦아 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며칠간의 대화중 인상깊었던 그의 말 몇마디를 되살려 본다.   


★ 걱정하는 대부분의 일은 일어나지 않드라구. 그리고 걱정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 

그러니 왜 걱정들을 하며 사냐구?  

★ 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 (밥 딜런 인용? )

★ 우리는 그 아무 것도 소유own 할 수 없지. 다만 잠시 점유possess하고 있을 뿐. 

★ 뭘 우주씩이나 연구하나? 그 시간에 내 마음과 몸뚱이만 공부하면 충분해. 인간 자체가 걸어다니는 유니버스니까. (로변철이 콴텀피직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자신이 최근 재미있게 보았다는 어떤 sf영화이야기를 하며)    

★ 뇌암을 겪은 뒤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죽는다는건 현세에서 다른 차원의 세계로 옮겨가는 트랜스퍼 과정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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