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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변철학

공간이동질

지금 이 시간 ...샌디애고 피에스타섬 모래사장에 정박 중 차창밖으로 조정연습을 하는 보트들을 바라보며 몇자 적어본다. 


훌타임알브이어. 또는 트레블러. Fulltime RVer, Fulltime traveler. 

미국에서 나같은 사람​을 호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팔자 늘어졌다고 말한다 

매일 여행다니며 바닷가에서 띵까 띵까 놀고 있다고 오해한다 


헌데 이건 뭔가, 

정작 내 마음엔 여행에 대한 패션​passion과 관심이 사그러진지 오래다. 

물론 여기서 여행이란게 뭐냐,
여행의 데휘니션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그 다음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만약 관광, 세상 풍물구경 만으로 여행의 의미를 제한한다면                                                          그같은 여행에 대해선 일찌감치 sick and tired가 왔단 것이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이름의 공간이동질(?)-그 의미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생존의 한 방식일 뿐이다. 특별한 의미 없다. 

굳이 좀 폼나게 덧붙이자면
자원고행(mind and body practice를 위한)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스스로 변화무쌍의 챨렌지 상황을 유발해
내안의 그분- '아이힘'의 발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에 보다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만들려는                                                                                내나름의 잔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여행은 분명 여흥이나 관광은 아니다. 

힘들게 모은 돈 길바닥에 뿌리며 
몰려 다니면서 수다 떠는,
화석연료 태워 지구별 오염시키는데나 일조하는 
공간이동질(?)에는 정말로 흥미를 상실한지 오래다. 

나의 공간이동 반복은 원하는 바라기보다 어쩔수 없는 당위일듯 하다. 

과거 유목민, 화전민들에게 그랬듯 로변철에게 삶을 견뎌내는 한 방식일 뿐이다.                  

6월부터 9월,  한여름 두세달 만큼은 트레이딩으로
피곤한 뇌를 잠시 쉬게 하고 싶었다.

우리에겐 외관상 여행 중 여행일터.

그런데 뭔가 멀리 공간이동을 해야 한다는 근거없는 의무감에 개끌리듯
끌려가며 일정을 짜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떠남에 대한 습관적 집착. 

결국 올 여름, 이런저런 여행계획(정확히는 여행 중 여행계획)을 다 취소했다.

그대의 건강문제도 있었지만.

유럽대륙으로 베이스캠프를 이동 

영국이나 노르웨이에서 청년기 옛추억을 반추하며 
한 6개월에서 일년쯤 살다 온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돌아 다니는 여행이 아니고 
일시 이주해 정착민 속에 살아보는 것이다. 

근데 아, 이놈의 구차니즘...


임마누엘 칸트는 돌아다니는걸 싫어해 평생 근처 바닷가 한번을 안가봤다는 썰이 있다. 
그 양반도 허전한 마음 달래려 여기저기 개 쓸데없이 다녀봤자 남는건 더 큰 공허감와                              크레딧카드 밸런쓰 뿐이라는 걸 알았던 모양.  

그대신 동네사람들이 그가 산책 나오는 시간에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오지랖을 넓히기 보다 그 에너지와 시간을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                  집중했던 모습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베가본드의 삶도 좋지만 때로는 칸트의 붙박이 라이프 스타일에도 매력이 느껴진다.


​사족: 작금의 전업이동생활-노매딕 라이프스타일을 버리고 다시 붙박이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한 여가선용으로서 관광여행의 의미를 폄하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일부 사람들의 의미없는공간이동과 방랑벽 그리고 여행마저 남에게 과시를 위해 하는 듯한 세태...를 보며 나의 여행은 어떤가 한번 되돌아보며 써 본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