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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변철학

정(正)과 반(反)의 하모니-세이튼(惡,陰,逆)의 명예를 회복하라.


정도가 있기에 일탈도 가능하다.   

벗어남과 역린(逆鱗)의 짜릿함도 그래서 맛 볼 수 있다.   


역(逆)으로, 탈루의 가능성으로 인해 궤적(길)은 필요해지고 생겨난다.   


나는 '길 아닌 길'을 택한다.   

                            

정도는 헷갈리는 수많은 오도들로 인해 그 존재가치를 높인다.    


저 유명한 코펜하겐학파의 양자역학자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닐스 데이빗 보아란 이는 

물질계에서 조차도 이 오묘한 우주의 섭리-모든 반대는 대립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임을 입증했다. 

물질의 현상계는 정신의 초월계를 보여주는 그림자며 반영... 


변철이가 가방끈이 짧은 관계로 100%이해는 못했지만 그의 저서들을 탐독 후 다시한번 무릎을 쳤다. 


정(선)과 반(악)은 대립 아닌 상호보완의 관계였던 것이다.  

우주만법의 마더네쳐가 한배로 잉태한 숙명적 관계란 말이다.  


요컨데, 

빛은 어둠이 잉태한 어둠의 자식이다. 악의 들러리, 어둠의 협조없이는 결코 탄생(을 발)할 수가 없으니. 


배드가이 없는 존 웨인을 상상할 수 있나?  

누가, 왜 그런 서부영화를 볼 것인가. 스프 안넣고 라면머글래? 


말난 김에 조금 오버한다.  


'낙타보다는 사자'(프리드리히 니체 버전으로....)가 되고자 했던 세이튼 Satan, 

금식하는 싯달타고다마를  산해진미로 시험한 마굴이 없었다면(상응부경전)  

인간에게 (神)은 그야말로 헌 발짝같은 존재 아니겠나.    


신이 헌신발짝이 되면 예수, 붓다도  용도폐기될 수 밖에 없다. 

존재이유를 원천적으로 상실할테니까. 

범죄없는 세상에 판검사경찰이 필요해? 다 밥 굶어 죽는다. 


수퍼맨, 배트맨 그리고 스파이더맨에게 

둠스데이나 브레니악, 조커나 펭귄, 그리고 그린 고블인이나 일렉트로가  없다는 격이자나

경전이고 만화고 간에 악과 반이 없는 스토리는 읽을 가치도 재미도 없어진다.  

김빠진 맥주를 누가 마실 것인가. 


그래서다.  

반은 없고 정만이 판친다는 천국낙원극락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 


나는 신의 뜻에 잘 부합한 '착한' 노예로봇들의, 개선의 여지도 희망도 없는(이미 모든게 완벽하니) 천당보다 

가끔 기름에 튀겨지고 주리질을 당하더라도 언젠가 벗어날 꿈과 희망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의 창조적 주체로서의 고뇌와 릴이 넘치는 지옥을 택하련다.  

이정표로 다 정해진 길, 다수가 택한 길은 편해도 노예의 길이다. 유대인 현자-청년 예수도 부연해 말했다. 그런 길은 패망으로 가는 길이라고. 


모든 어둠의 세력에 감사한다. 나로 하여금 노예 아닌 

내 삶의 창의적 주체- 빛의 전사(Agnostopian)로 거듭날 기회를 주었기에.


현상계의 한바탕 인생연극을 차분히 분석관찰해보면 어둠의 세력들이야말로 

조연 아닌 주연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면 성경의 중심은 Jehovah 아닌 세이튼Satan이 된다. 

마굴은 고다마 싯달타를 깨친 붓다의 붓다였던 거다. 


정과 반의 대립적 보완 그 절묘한 하모니로 

우리는 비로소 내 삶의 주인공, 주체가 될 가능성을 가진다. 


고로 나는 말하고 싶어진다. 

우리의 '눈이 하나님처럼 밝아질(창세기 3장)수 있'음을 알려준 기있는 반론제기자

-세이튼(惡,陰,逆)의 명예를 회복하라. 


그가 우리 인생에 진정한 의미와 과정(ontology of becoming)의 재미를 선물했나니. 


-부지원 가는 길에,  로변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