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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륙횡단 트럭운전이 낭만적이라고?



끝간데 없는 황야를 종일 달리던 그날. 

휴식 겸 개스를 넣으러 들어간 훌라잉제이flyingJ.  

잠수함을 트럭사이에 끼우다가 우연히 한국인 세마이 기사분을 만났다.  

취업이민와서 트럭킹 하는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간간히 들은 기억이 있어도 실제 길에서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반가왔다.

근데 이 분 용모가 눈썹이 짙고 이목구비가 뚜렷한게 보기드문
귀공자 타입이다. 
얼추 장동건 닮았다. 

지금은 후줄근한 차림에 도라꾸 몰지만 예전엔 한가닥 했겠다. 

트럭운전 할만 한가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인사치레 반 던진 질문이었는데 동건이 오빠로 부터 의외의 답변이 날아온다.  


허허허...재미요? 아주 지옥입니다. 지옥. 

네? 돈벌며 전국 두루 구경하고 좋다던데?

말도 마세요. 저도 그런 줄 알고 시작했지요. 근데 알고보니 세상에 못 할 짓이 이 짓이예요. 돈도 별로 못 벌고 가정 깨지고 몸 망가지고....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동안 투자한게 있으니 때려 치지지도 못하고....죽지 못해 삽니다. 
 


아무리 동족이지만 초면에 타인에게 너무 속내를 다 드러내는
이야기를 쏟아 놓는 그가 좀 부담스럽다. 

그리고 트럭 운전사 수입이 괜찮단 이야길 많이들 하던데. 
혹시 너무 좝job이 좋아 경쟁 자꾸 생길까봐 이러나...(장사하는 한국사람들 중에는 간혹 그런 찌질한 이들이 있다.  어쩌랴 척박한 환경에서 성장해  밴댕이가 된걸.)

근데 그게 아니었다. 
이 분 정말 많이 외롭고 지쳐 보인다. 

느글 느글한 햄버거 쪼가리에 고독을 섞어 씹으며 며칠이나 달렸을까. 오랜만에 동족을 만나니 꽤 반가웠나 보다. 목구멍에 거미줄도 털어 낼겸 한국말로 수다 좀 실컨 떨고 싶다는 품세였다. 
우린 휴게실로 들어가 아이스티 한잔씩을 놓고 마주 앉았다.  

동건이 오빠는 대학졸업 후 최고라는 S사에 다녔고 90년대 말까진 
자기 회사를 차려 잘나갔었다고 한다. 지금은 개나 소나지만 
그때 당시 BMW를 몰고 강남에 닭장을 두채나 소유했었다고.  

 그러다  아이엠에프IMF 때 다 털어먹었죠.
 
그 후 별꼴을 다 겪는다. 본인 표현에 의하면 '묫자리를 잘못 썼는지' 뭐하나 되는 일 없이 악운만 겹쳤다. 결국 막차타는 심정으로 미국에 왔다고 한다. 

그래 트럭은 얼마나 하셨나요? 

벌써 4년 넘어 갑니다. 근데 할 수록 힘드네요. 영어는 여전히 불통이고...

운전하는데 영어가 그렇게나 필요 한가요? 

웬걸요, 회사와 무선교신, 국경통과시 세관, 고장 수리시....매번 스트레스 엄청 받습니다. 나이들어 말마저 서투르니....

제 아는 백인기사들 보면 몇년 경력을 쌓은 후 자기차 사서 오너드라이버가 되면 수입이 상당하던데?  

저도 그걸 목표로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실상은 다름을 알았습니다. 
차 매입시 론이자에 보험, 수리비, 감가상각을 생각하면 결국 그게 그거더군요.
우린 결국 이민브로커, 운전학원, 회사,정비소,보험사의 밥이었던 겁니다. 돈버는 놈은 따로 있고 기사들만 죽어 나는거지요.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변철 형 모멘텀트레이딩 할때 잔챙이 데이트레이더들의 브로커리지만 돈 번다는 볼멘 푸념...  

특히 잊을 만하면 한번씩 일이 터지지요. 고장, 접촉사고...이거 환장합니다.   
예를들어 몇달 전 캔사스에서 허허벌판에 차가 멈춰요.  토잉해서  정비소로 갔는데 견적이 7천불이 나와요. 회사차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내 차였다면....결국 토우트럭비등 해서 8천불 가까이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바가지 쓴 느낌이 들지만 브로큰 잉글리쉬로 따질 수도 없으니 답답한거지요. 극단적으로 그냥 오십불 짜리 간단한 부품하나 교체하면 되는 거였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문제는 앞으로 장거리 뛰다가 또 그런 일 생겨도 영어 부족에  정비지식 일천한  우리 이민기사들은 거의 속수무책 또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세상에 쉬운일 없다지만 듣고보니 트럭 운전도 장난이 아니네요. 

더 힘든건 뭔지 아세요? 외로움입니다. 하루 종일 혼자 운전한다는 거,  성격문제겠지만 이거 저같은 외향적인 사람에겐 죽음이죠.  가족과 수시로 떨어져 생이별한다는 것도 힘들구요. 중년 부부가 떨어져 지내면 결국 문제가 터지자나요. 제 트럭취업 동기 다섯 중  셋이 이혼 아님 별거라니까요.

마음이 아팠다.
빵빵한 스펙에 출중한 용모의 장동건씨. 그런 그가 늙으막에 마지막 카드로 선택한 아메리칸 드림은 한없이 쪼그라든듯 보였다.

동족에 동향인데다가 비슷한 연대이어서 일까, 불과 몇분간의 대화였지만 난 동건씨의 복잡한 속내를 수정구 투시처럼 적나라하게 엿 본 느낌이었다. 그 번민, 늙은 가장의 중압감 그리고 대열에서 이탈한 불안감. 
 
물론 모든 취업이민 트럭기사 들이 다 그 처럼 후회일색은 아니리라.  

사실은 장동건씨에게 트럭일이 애초부터 성격상 맞지 않았던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세상 어느 직업이든 적성도 맞고 운대도 맞은 소수의 사람들 만이 살아 남는 법.  그러니 아니라고 생각되면 하루빨리 걷어 치우고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는게 상책이다. 
허나  그런 뻔한 소리를 지금 자탄으로 괴로워하는 그에게 해줄 계제는 아니었다. 그에겐 충고가 아닌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절망에 빠진 이민동지에게 뭔가 용기를 북돋아줄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없을까.
차를 타기 위해 파킹랏을 가로지르며 고심했다. 

     

같은 푸른하늘을 이고 살면서 혹자는 띵까띵까 잘나가고 혹자는 노력을 하는데도 고통에 늘 신음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사람들은 당연 주어진 조건의 차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어떤 경우이건 스스로 자기의 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의 태도가 언제나 문제란 것입니다. 즉 나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내안의 그분=아이힘)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장동건씨 얼굴에 
갑자기 뭔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소리냐는 듯한 표정이 살짝 스쳤다.

맞는 말씀인건 같은데... 현실의 중압감이 너무 크다 보니
그런 이야기들이 쉽게 마음에 와닿지를 않네요. 


하여간 이것도 인연인데 이름이나 압시다. 

우린 그제서야 통성명과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다. 

트럭에 오르는 그의 축쳐진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기도염원을 올렸다.  

 
부디 내가 던진 그 '봉창 뚜드리는 소리' 의 마지막 여운이 만트라가 되어
오늘 벌판을 달리는 내내 동건이형의 뇌리에 맴돌아 주기를. 

나아가 그 안에 또한 살아 계실 초월통섭 아이힘의 발현으로 지금 처한
고난의 심연에서 조만간 빠져 나올 수 있게 되시기를.